2014년 5월 14일 수요일

비극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말아야 하나

참담한 비극, 그것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이고 게다가 그 비극을 참극으로 키운 것이 정부의 잘못된 대처에서 온 것이라면 이 참극에서 오는 깊은 슬픔과 분노를,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에 쓰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슬픔을 삭히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문제를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도, 그것을 실행할 동력이 없으면 그 분석은 부질없는 짓이고 대책은 쓸데가 없다.

이미 비리의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얽혀서 돌아가고 있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거기서 나오는 이득과 편리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눠먹고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왠만해선 무너지지 않는다. 그걸 쌓으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였는데 쉽사리 부순단 말인가. 그 시스템 내부의 힘은 절대 그걸 무너뜨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선주들은 배의 원령제한을 없애기 위해 오래동안 로비를 해온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고, 민간구난업체가 재난현장에 불려나와 사업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법 개정을 위해 또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며, 퇴직한 해경간부나 해수부 출신 고위공무원들이 취업할 회사와 단체들을 조직하고 만드는데 또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어갔을 것인가. 이 거대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비리의 구조체는 해난 사고를 당한 승객을 제외하고는 모든 관련된 사람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한번의 사고로 와해되리라 기대하는 건 헛된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하는데, 형식적으로나마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는 거의 유일무이한 힘은 "정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슬픔과 분노에서 오는 동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가만히, 그대로 있어라"하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극은 그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이 동력을 받을 정치세력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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