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1일 수요일

아들의 군대

비록 타국 땅에 살지만 평소에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이런 저런 사소한 문제들이 있지만, 2차세계대전 후에 독립한 나라 중에, 게다가 곧바로 전쟁의 참화까지 겪은 나라 중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렇게 성장한 나라가 없다. 한국이란 나라, 한국인이란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가르쳐왔다.

시민들이 힘을 모아 군사정권을 몰아내기도 하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도 이뤄냈으니, 일본이나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의 그것과도 질적으로 다르다고 가르쳤다.

그래서일까, 아빠의 '꾀임'에 넘어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군복무를 하겠노라던 큰 아들이, 세월호 추모대회에 다녀와서는, 한국이란 곳이 "이런 곳"이라면 한국 군대에 가지 않겠단다.

대학교 2학년 쯤이 되면 시민권 신청 자격이 주어지는 큰 아들에게 군대는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이지만, 병역을 필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 군대를 가겠노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아내도 이런 국가를 어떻게 믿고 아이를 군대에 보내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2014년 5월 14일 수요일

비극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말아야 하나

참담한 비극, 그것이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이고 게다가 그 비극을 참극으로 키운 것이 정부의 잘못된 대처에서 온 것이라면 이 참극에서 오는 깊은 슬픔과 분노를,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에 쓰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슬픔을 삭히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문제를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도, 그것을 실행할 동력이 없으면 그 분석은 부질없는 짓이고 대책은 쓸데가 없다.

이미 비리의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얽혀서 돌아가고 있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거기서 나오는 이득과 편리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눠먹고 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왠만해선 무너지지 않는다. 그걸 쌓으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였는데 쉽사리 부순단 말인가. 그 시스템 내부의 힘은 절대 그걸 무너뜨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선주들은 배의 원령제한을 없애기 위해 오래동안 로비를 해온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고, 민간구난업체가 재난현장에 불려나와 사업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데, 법 개정을 위해 또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어갔을 것이며, 퇴직한 해경간부나 해수부 출신 고위공무원들이 취업할 회사와 단체들을 조직하고 만드는데 또 얼마만큼의 노력이 들어갔을 것인가. 이 거대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비리의 구조체는 해난 사고를 당한 승객을 제외하고는 모든 관련된 사람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다. 이것이 한번의 사고로 와해되리라 기대하는 건 헛된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힘이 있어야하는데, 형식적으로나마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는 거의 유일무이한 힘은 "정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슬픔과 분노에서 오는 동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가만히, 그대로 있어라"하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극은 그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이 동력을 받을 정치세력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는 점이다.

2014년 5월 8일 목요일

성명서 발표에 동참

세월호 관련해서 미국에 있는 학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참하기로 하다.

http://sewolscholars.weebly.com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은 300명 넘는 아이들을 산채로 수장시키는 걸 목격하고서도 "가만히 있으"면 큰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작은 것들을 실천해 나가기로 하다.
  • 독립언론에 후원금을 보낸다. 뉴스타파에 보냈다.
  • 뉴욕타임즈 전면 광고 운동에 기부금을 보냈다. 
  • 안산 학생들 집회에 필요한 김밥 후원에 참가하다.
  • 성명서 발표에 서명한다. sewolschoalrs에 서명했다.
세월이 수상하니 이런 일조차 권위주의적 정부의 눈치를 봐야할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방관하다간 세상을 이렇게 만든 공범이 되어버릴 것 같아, 작은 정성이나마, 작은 용기나마 내어본다.

2014년 5월 7일 수요일

결혼 20주년

지난 5월 1일이 결혼 20주년이었다. 노동절이라 깜박잊고 지나는 일은 없겠다싶어 결혼식 날짜를 그 날로 잡았었는데, 미국으로 건너오고 나니, 5월 1일이 아무날도 아니라 몇 해를 우리 둘 모두 그냥 잊고 지나기도 했었다.

세월호 참사로 분위기가 어수선 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별다른 이벤트는 없이 그냥 조용히 지나갔을게다. 동네에 있는 Buffalo Wild Wings에 둘이만 가서 가볍게 맥주 한잔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간동안 산전수전도 겪고 공중전까지 다 겪은 줄 알았었는데, 무슨 게릴라전 비슷한 것도 남았더랬다. 아무튼 우리 둘다 잘도 버텨왔고, 아이들도 우리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버티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또 다른 20년을 더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한 해 한 해를 20년처럼 생각하고 지내도록 하겠다.







2014년 5월 5일 월요일

세월호 선원들

개인적으로 사건 초기부터 의심을 했던 것. 하지만 설마 인간이라면.. 하고 설마 설마했던 게 점차 사실로 밝혀지는 것 같다. 혹시 선원들이 자신들의 안전한 탈출을 위해 승객들을 그자리에 머물라고 한 것인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선원들은 구명정이 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해경의 구조선이 언제오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조타실에서 대기하다가 바다에 뛰어들 필요도 없이, 침몰해 가는 배에서 해경의 구명정으로 옮겨탔다. 어쩌면 해경의 구조 능력이 형편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300명이 넘는 인원이 모두 조류가 강하고 수온도 낮은 바다에 뛰어든다면 자신들이 미처 구조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밖에 없다. 승무원들은 네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승객들에게 탈출 안내를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것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