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영화 - 레미제라블, 링컨



연말 연휴동안 두 개의 영화를 봤다.
"레 미제라블"과 "링컨"

"레 미제라블"은 아주 오래 전 한국에서 뮤지컬로 본 적이 있다. 겨울이었던 것 같은데 따뜻한 실내에 앉아 들리지 않는 영어에 집중하느라 피곤에 지친 뇌가 잠시 휴식을 취하느라 잠깐 잠이 들었었다. "레 미제라블" 뮤지컬 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내는 나보고 이런 걸작 뮤지컬을 보러가서 잠잔 인간이라고 사람 취급을 안해줬었다. 1부는 그럭저럭 놓쳐버렸었고 인터미션 이후에 2부는 그래도 제대로 봤다. 환상적인 무대연출은 지금껏 잊혀지지가 않고 마지막 부분의 바리케이트 장면에선 80년대가 떠올라 울컥하기까지 했다. 

좋은 기억으로 남겨진 뮤지컬과 지금 본 영화를 비교하는 것이 공정하지는 않지만 뮤지컬이 한 세 배쯤은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와서 배경이 된 프랑스 시민 혁명에 대해 궁금해졌다. 루이16세의 목을 쳤던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도 7월 혁명, 2월 혁명 등 몇 차례 시민 혁명이 더 있었고 그 때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최소 몇 만명 단위다. "레 미제라블"의 배경은 그 중 7월 혁명인 듯 하다. 시민의 권리를 그때마다 피를 쏟아 얻어낸 프랑스는 가히 혁명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를 돌아봤다. 프랑스 대혁명 때, 조선은 정조말기다. 1800년에 정조가 갑작스럽게 죽고나서는 대원군 집권이전까지 세도정치가 이어진다. 그 이후론 일제강점기를 지나 남과 북에 공화국에 들어서긴 했지만, 시민들이 싸워서 얻어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보통선거는 어떤가. 이 또한 주어진 것이지 피로서 얻어낸 것이 아니다. 4.19로 독재자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그 죄를 단죄하지 못했다. 6.10항쟁으로 직선제를 얻어내긴 했지만 군사정권을 시민의 힘으로 몰아내지 못했다. 죽은자들은 차가운 땅에 누워있는데 학살자들은 천수를 누린다.

어쩌면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은 우리들에게 과분한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절망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의 예를 보더라도 때론 반혁명에 역사가 거꾸로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굽이치는 강물처럼 작은 물길들이 합쳐지면서 결국은 바다에 다다르기 마련이다. 길게보고 희망을 노래해야 할 때 인 것 같다.

"링컨"은 "Team of Rivals: The Political Genius of Abraham Lincoln"라는 책을 원작으로하는 영화로 노예제도를 영구적으로 페지하는 수정 헌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링컨을 그렸다. 

정치란 더럽고 추잡스러운 것이라 손가락질 하면서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일상을 가장 광범위하게 규정하는 것이 정치를 통해 만들어지고 강제된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영화에서 링컨은 때론 비열한 방법을 동원해가며 수정법안 통과에 필요한 득표를 모으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을 '포섭'해간다. 결국은 수정 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노에제도를 영구히 폐지시키게 된다. 

정치란 것이 선의로만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문재인 후보의 말이 생각난다. 선한 의지와 진심은 그 자체로는 정치의 장에서 완전한 역할을 할 수 없다. 링컨을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꾼이라 폄훼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치란 자신의 의지를 100%관철 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타협해서 의지의 일부라도 관철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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