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6일 화요일

어느새 2월말

지난 몇 주는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닥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벌여놓은 일이 많아 한번은 터지지 싶었는데, 바로 그런 상황이 벌여졌었다.

  1. 중간고사 성적처리
  2. 밀린 실험과제 채점하기
  3. 후배와 하는 과제에서 결과내기
  4. 제안서 준비해서 내기
  5. 책쓰기 (세번째 장 마감)
  6. 신임교수 임용 관련 회의/인터뷰
  7. 동료교수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관련 회의/진행
  8. 새로 가르치는 과목 수업준비
  9. 이번 봄과 여름 우리 집에 방문하시는 어른들 일정 확정/항공권 발권
이렇게 몇 주를 후다닥 보내고 나니 벌써 2월말이 되었다. 한국같았으면 봄맞이가 슬슬시작되었을텐데, 미시간은 아직도 한겨울 속이다. 이번 주말부터 다시 온도가 많이 내려간다는 예보다. 

주변 사람들 도움 덕분에 그래도 빵구낸 일정은 아직 없고, 이번 주말까지는 쓰고 있는 책의 세번째 장을 마감하는 일만 남았다. 

작년에 아버지 건강문제로 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일종의 '대기' 상태로 있었던 덕에 아무래도 일을 많이 못했다싶은 생각이 들어서인지 작년말부터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은게다. 이제부터 정리해 나가면서 더 이상 일을 벌이지는 말아야지.

몸으로 때워나기기에는 이젠 몸이 그야말로 예전(?)같지가 않다.



2013년 2월 15일 금요일

졸업논문 심사

그동안 몇 학생의 학부졸업논문 심사를 하긴 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인쇄본을 받아보게 되었다. 초안을 작성해 오겠다면서 시간약속을 어지간히도 안지키던 학생이었는데, 졸업은 재작년 말에 한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은 학사학위를 졸업 후에 1년이 넘어 받게 되는구나. 내가 굳이 까다롭게 굴지도 않았는데 몇 번 교정본이 왔다 갔다 하다가 1년이 훌쩍 넘어가버린거다. 새 교정본이 올 때마다 기본적인 것도 손을 보지 않았으니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수업을 못 따라오거나 공부를 안하는 학생은 아니었는데, 그것보다 해야할 일을 정하고 그에 따른 일정을 관리하는 쪽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니었는데, 무심결에 표지를 넘겨보니 내 이름으로 서명된 페이지가 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걸 줘도 되나 하는 기분이 든다. 과연 이럴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한번도 진지하게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얼치기 선생이 말이다. 


그래도 막상 이렇게 찍혀나온 걸 보고 있자니 뭔지모를 책임감이 뒤늦게 든다. 아.. 이런 기분 싫은데..

3년 반

미시간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3년이 훌쩍 지났다. 내겐 미국 어디나 마찬가지로 낯설고 물설으니 미시간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겠다. 어쨌든 낯선 미시간에 와서, 덜컥 집도 사고, 아이들도 학교를 몇 해째 다니고, 아내도 이런 저런 일을 하게되고, 나도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에서 해야할 일도 많아지면서 그야말로 어느 정도 정착이란 걸 하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큰 아이도 대학 준비를 해야할 나이가 되었고, 작은 아이도 이번 가을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입학한 학교를 다니다가 그대로 졸업해 본 적이 없다고 투덜대던 작은 아이 생각이 난다. 바램대로 이제 곧 여기에서 처음으로 입학한 중학교에서 졸업을 처음으로 하게될게다. 큰 아이도 고등학생이 되었고, 별 일이 없다면 이곳을 졸업하게 될게다. 아이들이 어른이 된 후 이곳을 어떻게 생각하게될까? 내 기억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아주 어릴적 아련하게 남아있는 기억들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을 보면, 아이들은 어쩌면 텍사스에 살던 시절을 고향처럼 기억하게 될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 하는 식으로 잔소리가 늘어가는 나를 발견한다. 늘어가는 잔소리만큼 나도 딱 그만큼씩 노인네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 왁짜지껄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학교로 출근을 했다. 4, 5년 후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나서고 아내와 나만 넓은 집에 남겨져 있는 상상을 한다. 새털같이 많은 나날들이 지나고 나면 쏜살같다. 

2013년 2월 8일 금요일

아버지 생각

아버지 기일이 다가와서일까. 요 며칠 아버지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나 자신이 살가운 아들도 아니었고, 아버지도 대부분의 그 연배 경상도 남자들처럼 자식들에게 별 말씀은 없으신 분이었다.

이제와서 갑작스레 내게 무슨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도 아닐텐데 자꾸만 관속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과 산소에 마지막에 묻히실 때의 정경이 느닷없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동네 어귀에 있던 정자에 앉아 산책 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시던 모습이며, 아무 생각 없으신 듯 무심한 표정으로 TV를 응시하시던 모습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모습들이 자꾸 내 머리 속에 들어 왔다 나갔다를 한다.

이 달 말이면 벌써 아버지 기일인데, 세월이 참 시나브로 흐른다 싶다.

금요일 오후, 올 상반기는 유난히 바쁘게 보내게 될 모양인데, 주말에 해야 할 일이 딱 하고 버티고 있으니, 마음이 주말을 맞는 게 아니라 마치 다시 월요일을 맞게 되는 기분이다.

2013년 2월 4일 월요일

지붕

지난 주에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더니만 결국 지붕의 일부가 손상을 입은 것 같다. 다른 때보다 유난히 소리가 많이 난다싶었더니 심한 바람에 일부 지붕의 약한 부분이 견디지 못한 것 같다. 멀리서 보면 무언가 얹혀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지붕에 타일처럼 붙어있는 것들이 마치 일부러 조각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멋지게(?) 일어나 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지붕 고치는 사람 연락처를 받아 상황을 보고 연락을 달라고 해 놓았다.

몇 주 전에 자동차 고치느라 2천불 가까운 돈을 치르고 나니, 통이 커져서인지 별로 걱정은 안된다. 말썽없이 잘 고쳐지기만 바랄 뿐이다. 가끔씩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부는 동네이니 튼튼하게 고쳐져야 할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를 수리해야했던 이유는 엔진이 과열되었기 때문이다. 냉각수가 똑 떨어져버렸던 모양이다. 보통은 엔진오일 같은 것 갈 때 보충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직접 확인해보고 채워주기도 했는데, 내가 주로 쓰는 차가 아닌지라 잠시 관리를 소홀히 했더니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침에 엔진 과열등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상태로 10마일 정도는 더 운전을 해야했는데, 그 때문에 손볼 곳이 많아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게 되었다. 바로 차를 세우고 견인을 했어야 했다고 수리하는 사람이 충고를 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학교 근처에 자주 가는 수리점이 있어 빨리 손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내 혼자 앤아버를 다녀오는 길에 이런 일이 생겼더라면 아주 골치아프게 될 뻔했고, 그 상태로 계속 운행을 했다면 엔진 수리도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불행중 다행이라 생각한다.


2013년 2월 1일 금요일

조교수 채용을 위한 전화 인터뷰

우리 과에서 새로 교수를 뽑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과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전기 컴퓨터 공학과" 쯤 되는데 그 중에서 전기 분야 쪽으로 조교수를 채용하려고 하는 중이다. 작년에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나도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연말부터 공고에 들어가서, 올 초부터 위원회는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많은 지원자 중에 최종적으로 열명 남짓한 후보자를 골라냈다. 그 중 절반의 후보자들을 상대로 오늘, 전화 인터뷰에 들어갔다. 

전화를 걸기 시작하니 마치 내가 지원자가 된 듯 살짝 긴장까지 되었다. 한 때 지원자로서 전화 인터뷰에 응했던 때가 갑자기 떠올라서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경력과 실적을 가진 분들이 많았는데, 내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본 것은 많은 분들이 상당기간 박사후과정을 하고 있거나, 3~4년의 박사후과정 후에 회사에 취업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분들과 비교해본다면 졸업 후 곧바로 학교로 오게된 나는 정말이지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위원회에서 후보들의 순위를 매겨놓았는데, 대체로 그 순위안에서 상위에 들어가는 분들이 인터뷰 준비도 철저히 했고, 우리 학교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해 놓은, 그러니까 인터뷰 준비가 잘 된 분들이란 것이다.

위원회의 여러 위원들이 의견을 여러차례에 걸쳐 모으니 확실히 좀 더 객관적이게 되는 것 같다. 상위에 올려진 분들이 대체로 무난하게 인터뷰를 진행하셨기 때문에 원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물론 약간의 변동은 있을 수 있겠지만 후순위 분이 위로 많이 치고 올라오기는 힘들 지 않을까 싶다. 후보자 입장에선 전화 인터뷰의 특성상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안타깝겠지만, 짧은 시간 관계 상 특별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고 무난하게 인터뷰가 진행되는 경우, 원래 우선 순위가 유지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위원 개인별로 특성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세 명의 온사이트 인터뷰 후보자를 최종적으로 골라내야 하기 때문에 상위 다섯 명 중에서 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후보자 중의 두 명의 한국인 지원자를 내가 위원 자격으로 후보로 추천하고 다른 위원분들의 동의 하에 최종 후보 목록에 올렸다. 한국 분이 오신다면 나로서는 크게 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지원자로서의 애타는 심정을 잘 아는 나로선 한 분이라도 더 기회를 드리고 싶기도 했다.

여기 후보들 중에 한분이 최종적으로 우리 학과로 오게된다면, 돌이켜보면 작은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서 어떤 한 개인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것인데,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이런 것들이 점점 더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